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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술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의 역사와 종류

 

 

 

 

 

술의 기원은 인류가 사냥과 채집으로 생활하던 당시의 구석기 시대에도 과실주가 있엇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그것으로 보아 술의 역사는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긴 합니다.  인간이 최초로 양조한 술은 맥주로 BC3000년경 홉이 들어간 맥주가 제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도 맥주를 좋아하기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하니 왠지 뿌듯한 기분도 들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즐겨마시는 맥주 중 가장 세계에서 오래되었다고 하는 것은 독일의 비엔슈테판입니다.  1040년 바이엔슈테판 수도사들에 의해 양조장이 설립된 후 약1000년의 전통 (곧 오게될 2040년이 딱 1000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과 양조기술로 전 세계 맥주의 역사적 기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계 최초 누가 처음 만들고 발견했고 등등을 중요시 여기입니다.  이것이 역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술은 그것을 알 수 없으니 술의 역사에 대해선 잠시 접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요야가하자면 술은 누가 처음 발견하진 모르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메이커 술은 위에서 말씀드린 바이엔슈테판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도 술을 역사를 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작점은 불분명하지만 정말 많은 종류의 술과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술에 대해 종류를 먼저 조금 알아보려합니다.

 

 

 

 

 

 

 

 

술의 종류

 

 

1. 발효주

 

말 그대로 과일이나 곡류 등의 발효시켜 만든 술입니다.  대체적으로 알콜 함량이 1~18%정도로 낮고 향이 부드러운 맛을 내는게 특징입니다

 

2. 증류주 (위스키, 보드카, 브랜디, 럼, 데킬라 등)

 

발효된 술 또는 액즙을 증류하여 만드는 술입니다.  대체적으로 알콜 함량이 20~50%로 굉장히 독한 술입니다.  우리가 즐겨마시는 소주는 증류주는 아닙니다.  알코올 함량이 40%인 안동 소주는 증류주가 맞으나 일반 소주는 증류주가 아닌 희석주입닏.ㅏ

 

3. 혼합주(칵테일, 섞어먹는 술)

 

향기와 맛 빛깔에 관게있는 약제를 만들거나 주류끼리 혼합하여 만든 술입니다. 기네스밤과 베이리스 밀크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술의 어원과 술에 대한 기록

 

 

우리나라 술의 고유 말은 '수블, 수불' 이었습니다.  발효과정에서 물이 부글 부글 끓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 수을 로 기억되는데 이 말이 점차 변천하여 술이 되었다고 보아집니다.  술에 대한 기록 중 제왕운기에 동명성왕의 탄생에 술이 얽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이 청하의 웅심연에서 더위를 피하는 것을 보고 반해 새 궁전을 짓고 세 처녀를 초대해 술을 대접했습니다  그 중 유화와 정이 들어 후에 주몽을 낳았고 이 사림이 훗날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예전에도 남녀 간의 애정 사에는 언제나 술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술은 자연적으로 발생해서 농경시대에 본격화 되었다는 견해가 매우 지배적입니다.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 마시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농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고 모든 행사에는 술이 애용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술의 변천사 이야기

 

 

 

삼국시대에는 곡물을 사용해 술을 빚는 방법이 고구려에서 완성되었고 주변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곡식을 발표시켜 만드는 양조방법이 완성되어 곡아주라는 명주가 탄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곡주 양조 기술은 일본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만 일본 고사기에 의하면 백제 수수보리가 일본에 누룩과 술빚는 법을 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백제의 양조기술이 일본에 처음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에서 들여온 낙랑주법을 들여와 당대의 시인들이 칭송하던 신라주를 빚어냈습니다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는 다양한 양조 곡주가 개발 되어 청주류가 음용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 형태가 완성되고 양조 기술과 술의 종류가 다양해지게 됩니다.  중국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보면 주류문화와 예주 문화이 보편화로 감주와 점감부가 공식 연회 석상을 지배하였고 전통탁주인 이화주와 함께 궁중의 양온 좌고에서는 청주와 법주가 빚어졌고 서민 사회에서는 막걸리가 보편화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고려인들은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라는 이야기나 잔치때 술은 맛이 달고 빛깔이 짙으며 사람이 마셔도 별로 취하지 않는다고 고려 술의 평가가 내려져 오고도 있습니다. 소주의 경우 고려 말기에 증류식으로 전래가 되었습니다.  증류식 소주를 두고 원나라에서는 아라길주 만주에서는 아라키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불렸습니다.  현재 소주의 명산지가 된 개성 안동 제주는 원나라가 일본을 징벌한 계획으로 미루어보아 원나라를 기점으로 전래되었다고 보아집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 술의 전성기의 때가 됩니다.  조선 전기에는 중앙주류의 선호 등 양조 기술상의 고급화 추세로 원료가 멥쌀 위주에서 찹쌀 위주로 전환되고 고려 말기 유입된 증류주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류층에서는 중양주류를 존중하는 경항이 과분히 뚜렷해지면서 백로주, 삼해주, 이화주, 청감주, 부의주, 항오주, 하향주, 국화주 등이 명주로 이름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가문마다 집에서 빚으 가양주가 발달하고 다양한 원료와 야조법을 활용한 지역별 명주가 성행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탁주, 약주, 소주 외에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호양주가 등장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여 화려했던 술의 전성기는 쇠퇴기로 바뀌게 됩니다.  1907년  주세령이 공포되었고 그 해 9월 주세령이 강제 집행되면서 일본은 보다 효율적으로 쥬세를 받아들이기 위해 술 제조를 여러가지로 통제하기 됩니다  1916년 주세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우리 술이 불벏으로 간주어지게 되면 약주, 탁주, 소주로 단순 규격화 되었고 가양주는 법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 술은 몇몇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이 후 해방 되었으나 식량과 원료 농산물의 부족으로 주류 생산이 제한 되었습니다.  그후 1965년 양곡 관리법으로 쌀을 사용한 술 제조 또한 금지되어 전통주의 맥이 끊기게 됩니다.  이후 대신 밀가루로 빛은 탁주와 약주가 주류를 이루고 1970년대 희석식 소주가 생산량이 급증을 발판으로 1987년 맥주가 막걸리의 소비량을 넘게 되고 올림픽을 시작으로 양주소비도 늘어나게 됩니다.  1995년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게 허용되었습니다만 그 이후에 우리 술 살리기가 시작된 세월이 너무나 긴 것 같습니다.